성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로마서 8:3) 이 성경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인류의 영원한 속죄 제물이 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어떤 사람은 “예수님은 구속 사역을 하셨고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어린양으로 비유되었는데, 여기에 어떤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까?”라고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먼저 속죄제가 무슨 뜻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레위기 4장 27절에서 31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그 범한 죄를 인하여 그것을 예물로 삼아 그 속죄제 희생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희생을 번제소에서 잡을 것이요 제사장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단 밑에 쏟고 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 희생의 기름을 취한것 같이 취하여 단 위에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롭게 할지니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그리고 레위기 16장 30절과 31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습니다.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로 정결케 하리니 너희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이는 너희에게 큰 안식일인즉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영원히 지킬 규례라”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율법을 반포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키도록 했고, 율법으로 그들이 땅에서 생활하도록 이끄셨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지켜야만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의 타락한 본성으로 인해 점차 율법을 지킬 수 없게 되어 돌에 맞아 죽게 될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속죄 제물을 바쳐야만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사함받을 수 있었고 율법에 의해 정죄되거나 죽지 않게 되었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매년 7월 10일은 이스라엘의 속죄일로, 이 날이 되면 백성들은 처음 난 흠이 없는 소나 염소를 속죄 제물로 삼아 제단에 바침으로써 사람들이 한 해 동안 지은 모든 죄를 사함받아 정결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즉, 소나 염소의 피로 사람의 죄를 덮어 죄 사함의 증거로 삼는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시대 여호와 하나님은 소나 염소의 피를 사람의 죄를 정결케 하는 증거로 삼으셨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바쳐진 속죄 제물로 말미암아 율법에 의해 정죄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축복과 돌보아 주심을 구할 자격이 있게 된 것입니다.
율법시대 말기에 이르러 이스라엘 백성들은 갈수록 율법을 지킬 수 없게 되었으며 죄짓는 횟수도 갈수록 빈번해져서,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효과에 달할 수 없게 되었고 성령께서도 그들을 증오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타락하여 마음이 하나님과 멀어지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1장 11절에서 15절에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말씀한 바와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당시의 인류가 어느 정도까지 타락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을 향해 진노하고 그들의 죄행을 책망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계속 그렇게 나아간다면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의해 저주를 받아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의미도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죄로 가득찼고 죄 속에 살면서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가호를 빌었고,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원한 속죄 제물을 얻을 수 있도록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역시 당시의 타락한 인류의 필요에 따라, 하나님 자신의 경륜에 근거하여 인류가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나도록 성육신으로 인간 세상에 오셔서 속죄제인 어린양이 되심으로 사람의 죄를 담당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미리 예언하셨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이사야 53:6~12)
하나님께서 성육신으로 사역을 행하실 때, 세례 요한도 예수님이 곧 속죄 제물인 어린양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 바로 요한복음 1장 29절에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예수님은 인간 세상에서 3년 반 동안 사역을 하셨습니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 내셨으며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셨고 사람들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또한 사람을 포용하고 용서 하셨으며, 결국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친히 속죄 제물이 되어 인류의 구속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사역에서 율법 아래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구속하셨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죄를 능히 사할 수 있는 속죄 제물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던 사람들의 소망이 실현된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더는 속죄 제물을 바칠 필요없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죄는 더 이상 사람이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데에 장애물이 아니고, 더는 사탄이 사람을 참소하는 약점도 아니었습니다. 당시 율법하에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에서 걸어 나올 수 있었고, 예수님 앞에 나와 기도할 수 있었으며 죄 사함을 얻고 은혜받을 자격이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인류는 계속 생존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속죄제인 어린양으로 비유된 것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사역을 완수하고 인류를 고통의 세계에서 구원하기 위해 그는 사람에게 정죄를 당하고 모든 사람의 죄를 담당했다. 그가 받은 그 모든 고난은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가 받은 고난은 무엇을 의미할까?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헌신을 의미한다. 또한 인류를 구원하고 사람의 죄를 속량하고 그 단계의 사역을 완수하기 위해 받은 모든 굴욕과 대가를 의미한다. 또한 하나님이 인류를 십자가에서 속량할 것임을 의미한다. 이는 피의 대가이고 생명의 대가이며, 그 어떠한 피조물도 갖추지 못한 것이다.』,『그는 자신이 육신에서 앞으로 담당할 책임이 얼마나 중차대한지, 그가 직면할 고통이 얼마나 잔인한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 가운데서 무기력하고 율법 아래에서 불쌍히 살며 힘없이 발버둥 치는 인류를 볼 때마다, 그의 마음은 점점 아파 왔고,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하고 싶은 마음은 더 절박해졌다. 자신이 어떤 곤경에 처하든, 자신이 앞으로 어떠한 고통을 받게 되든지 간에, 죄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구속하겠다는 마음은 더욱 확고해졌다. 이 과정에서 예수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사역이 무엇인지, 담당할 사명이 무엇인지 갈수록 확실히 알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어서 빨리 담당하고자 하는 사역, 즉 사람의 모든 죄를 지고 인류를 대신해 속죄하는 사역을 완성하고 싶었다. 그러면 인류가 더 이상 죄 가운데서 살지 않고 하나님도 속죄제로 말미암아 더는 사람의 죄를 기억하지 않을 수 있으며, 이로써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계속 앞으로 진행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인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바쳐 희생하고 싶었으며, 또한 속죄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기 를 진심으로 바랐다. 게다가 하루빨리 그 사역을 완성하고 싶었다. 인류 생활의 참상을 본 그는 1분 1초도 지체하지 않고 더 빨리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고 싶었다. 그런 간절한 마음이 생겼을 때, 그는 자신이 당할 극심한 고통과 수모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오직 하나, ‘자신을 바침으로 십자가에 달려 속죄제가 되기만 하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이 새 사역을 펼칠 수 있게 될 것이며, 죄 속에 살던 인류의 삶과 처지가 완전히 바뀔 것이다.’라는 신념뿐이었다. 그의 신념과 그가 하고자 한 일은 다 인류를 구원하는 사업과 관련이 있다. 그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즉,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여 하나님이 다음 단계의 사역을 순조롭게 전개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 단락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지고지상하신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주재자로 자신을 낮추셔서 육신에 거하심으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는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사역을 하심과 동시에 보통 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참아 내야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정식으로 직분을 담당하기 시작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까지 모진 굴욕과 고통을 당하셨고 타락한 인류에게 버림받고 정죄받는 치욕을 참아 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지만, 오히려 더럽고 타락한 인류 가운데서 생활하셨는데 그 고통은 너무나 큰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이 험난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계셨고 영과 육이 엄청난 고통에 직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온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바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인류의 속죄 제물인 어린양으로 비유한 것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인류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은 그분이 인류를 죄에서 구속한 것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속죄 제물이 되고 또 말세에 다시 오셔서 사람들에게 더 많은 진리를 베풀어 주시며,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죄성을 철저히 제거하고 정결케 하는 심판 형벌 사역을 하여 우리를 죄의 속박에서 철저히 벗어나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베드로전서 4:17),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베드로전서 1:5), 여기에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말세에 더 큰 구원을 예비하셨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계속하심으로 진리를 선포하셔서 사탄에 의해 타락한 인류를 철저히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은 받았지만, 죄짓는 본성은 여전히 존재하여 낮에는 죄짓고 밤에는 죄를 자백하는 삶을 되풀이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는 사역을 계속하시려는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크고 깊다는 것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형제자매님, 이번의 교제를 통해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인류의 속죄 제물인 어린양으로 비유된 의미를 잘 이해했으리라 믿습니다. 아울러 여러분들도 저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를 철저히 구원하심으로, 낮에는 죄짓고 밤에는 죄를 자백하는 삶에서 벗어나도록 해 주시고 완전히 정결케 되고 새롭게 되어 하나님과 함께 천국으로 들어갈 날을 기대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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