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도대체 누구실까요 당시의 사람들은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었을까요
누가복음 4장 22절에 “저희가 다 그를 증거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바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라고 기록되었고, 요한복음 3장 2절에는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또 마태복음 16장 13절과 14절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성경 구절을 통해 예수님의 신분에 대해 당시 유대 백성들 사이에 서로 다른 견해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 어떤 사람은 선생이라고 했으며, 또 엘리야, 예레미야 혹은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짐작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분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했는데, 그러면 예수님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성경에 성령께서 증거하신 기록이 있습니까? 기록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누구냐고 제자들에게 물으셨을 때, 시몬 베드로는 성령의 계시를 받아 “주는 그리스도시요…”(마태복음 16:16)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 역시 베드로의 답변을 인정해 주셨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태복음 16:17)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은 요셉의 아들도 선생도 아니며, 더욱이 선지자도 아니고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을 그리스도, 하나님의 현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 먼저 하나님 말씀 두 단락을 보겠습니다. 『성육신 하나님을 가리켜 그리스도라 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이며, 이 육신은 육에 속한 그 어떤 사람과도 다르다. 다르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육에 속하지 않은, 영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정상 인성과 완전한 신성을 모두 갖고 있으며, 그의 신성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그의 정상 인성은 육신으로 하는 모든 정상적인 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신성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위한 것이다.』, 『정상 인성을 가진 그리스도란 정상 인성과 정상 이성, 정상적인 사유를 가진 육신으로 하나님의 영이 실체화한 것이다. ‘실체화’란 하나님이 사람이 되고, 영이 육신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하나님 자신이 정상 인성을 지닌 육신에 거하면서 그 육신을 통해 신성 사역을 나타내는 것, 이것이 바로 ‘실체화’이자 말씀이 육신 된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으로써 겉보기에 정상 인성이 있는 사람이지만 사실상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육신은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있고, 진리를 선포하시어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해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정상 인성과 완전한 신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부모와 형제자매가 있으며, 보통 사람들과 같은 성장 과정이 있으며 정상인의 의식주 그리고 희로애락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그분의 정상 인성의 일면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29세가 되었을 때 직분을 시작하셨고, 사람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또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셨으며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온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서 구속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신성 안에서 행하신 사역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은 권능과 위력이 있으며 사람에게 진리를 베풀어 줄 수 있고 길을 가리켜 줄 수 있으며 생명을 공급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입으신 육신은 그 어떤 육에 속한 사람과도 다르며, 그분은 완전히 하나님 자신을 대표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현현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본질이 있고,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성육신한 이상 해야 할 사역을 가져오고, 하나님이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속성(원문: 所是)을 나타낼 것이다. 성육신한 이상 사람에게 진리를 가져다주고, 생명을 베풀고, 길을 가리켜 줄 수 있다. 하나님의 본질을 갖추지 않은 육신이라면 분명히 성육신 하나님이 아니다. 이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확실하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맞는지 알아보려면 그가 나타내는 성품과 말씀으로 확인해야 한다. 바꿔 말해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인지 혹은 참 말씀인지 확인하려면 반드시 그의 본질로 판별해야 한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입은 육신인지 아닌지의 핵심은 그 본질(사역, 말씀, 성품 등 훨씬 다양한 측면)에 있지 겉모습에 있지 않다는 말이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이 육신이 하나님의 현현이라는 것을 더 분명하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겉면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행하신 사역과 선포하신 말씀 그리고 드러내신 성품에서 보는 것입니다. 아래 글에서 이 방면에 관해 자세하게 교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님께서 행하신 사역으로 볼 때
율법시대 말기에 이르러 율법 아래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이 죄를 범하고 죄 가운데 살면서 스스로 헤쳐 나오지 못하고 못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에 의해 정죄되어 죽음을 당할 위험에 직면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친히 육신을 입으시고 인자가 되어 인간 세상에 오셔서 사역하셨습니다. 그분은 인류의 속죄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온 인류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주님 앞에 나아와 기도할 수 있었고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면 모든 죄를 사함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더 이상 율법에 의해 정죄되어 죽음을 당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사역에서 보면 그분의 사역은 선지자를 포함해 그 어떤 사람도 할 수 없는 것으로 오로지 성육신 하나님만이 자신의 사역을 완성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율법시대를 끝내고 은혜시대를 여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으로 볼 때
예수님의 말씀에는 권능과 위력이 있어 예수님이 바다와 바람을 꾸짖자 풍랑이 바로 잠잠해졌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언제 어디서나 창조주의 권능과 능력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바람과 바다도 하나님께서 만드셨으니 당연히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 한마디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은 물질세계를 주관하실 뿐만 아니라, 또 음부를 주관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권능의 상징입니다. 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삼일 후에 부활한다고 알려 주셨고 나중에 그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후에 반드시 이루어지며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이러한 권능과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밖에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해 줄 수 있고 길을 가리켜 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한복음 14:6) 여기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다 진리이므로 사람에게 실행의 길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전에 말씀한 것과 같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에게 그분을 믿는 모든 자들, 즉 예수님의 이름을 외치는 자들이 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말씀을 준행하고, 귀하게 여기며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만이 결국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분명하게 알려 주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천국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신 것입니다.
3. 예수님께서 유로하신 성품에서 볼 때
예수님께서 은혜시대에 행하신 구속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성품을 드러내셨습니다. 비록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알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은 오천 명이 진심으로 그분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저 호기심과 이적 및 기사를 보고 싶어서 따를 뿐이라는 것을 분명히 아셨지만, 그래도 그들을 만족시켜 주었고 잘 대해 주었습니다. 또 하나님은 그들에게 풍성한 은혜를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믿는 것을 가로막고 하나님의 사역을 대적하고 훼방을 놓으며 모독하는 바리새인들에 대한 주님의 태도는 책망과 저주였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태복음 12:32),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마태복음 23:13)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사람이 범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공의와 위엄, 진노의 성품을 드러내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서로 다른 사람에게 다른 태도를 드러내신 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은 생생한 것으로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고유한 성품을 드러내실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맺음말
여기까지 말했으니 우리는 왜 예수님을 그리스도, 즉 성육신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는지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초에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성육신과 그리스도에 관해 믿지 못하고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신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전혀 구하고 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주 교만하고 독선적이며 자신의 관념과 상상으로 예수님을 평범한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정죄했습니다. 그들은 줄곧 자신들 관념 속의 메시야가 그들 가운데 강림하기만을 기다렸지만, 죽을 때가 되어서도 메시야의 오심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오셨지만 그들은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세에 다시 오신다고 하신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예언한 말씀과 같습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2:40),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누가복음 17:24) 이 예언에서 주님이 다시 오시면 역시 인자의 모습, 즉 성육신으로 인간 세상에 강림하신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을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당초에 예수님을 평범한 사람으로 판단했던 바리새인들 혹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여겼던 신도들처럼, 말세에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 문제는 우리가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겉모습을 살피느라 그 본질을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사람이 무지몽매한 것이다. 겉모습은 본질을 결정할 수 없다. 더구나 하나님이 한 사역은 사람의 관념에 부합할 리 없다. 예수의 겉모습이 바로 사람의 관념에 어긋나는 모습이 아니었더냐? 예수의 용모와 차림새가 예수의 진짜 신분을 설명할 수 없지 않았더냐? 당시 바리새인이 예수를 대적한 것도 예수의 말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의 겉모습만 봤기 때문이 아니더냐? 나는 하나님의 현현을 찾는 형제자매들이 역사적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며, 하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현대의 바리새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하나님의 재림을 어떻게 맞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고, 어떻게 진리에 순종하는 사람이 될지 정신 차리고 고민해 보길 바란다. 이는 예수가 구름을 타고 돌아오길 기다리는 모든 사람의 책무다.』 이 단락의 말씀은 우리에게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는데 실행의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사모하고 구하는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에서 하나님의 신분을 알아차릴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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