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믿는 형제자매마다 성경을 아주 중요하게 대하는데, 하나님을 믿으면 반드시 성경을 보아야 하고 성경을 보아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며 어느 누구도 성경의 말을 어겨서는 안 되고 성경을 떠나서는 안 되며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고 여깁니다. 총괄적으로 말해서, 사람 마음속에 있는 성경의 지위는 아주 높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하나님 나라 복음이 중화 대륙에서 확장된 이후 수많은 형제자매들이 성령의 인솔 하에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공급과 자양을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형제자매들은 오히려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성경을 보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만 먹고 마시는 데에 대해 관념이 생겨 ‘성경을 보지 않는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일 수 있는가? 하나님을 믿으면 어찌 성경을 벗어날 수 있는가? 성경을 떠나면 주님을 배반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와 말씀을 받아들이기 싫어합니다. 그럼 성경을 보지 않으면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닌지? 성경을 떠나면 정말 주님을 배반한 것인지? 하나님은 성경을 어떻게 대하시는지? 우리가 도대체 어떻게 성경을 대해야 하나님 뜻에 맞겠는지? 솔직히 말해서, 이런 문제에 대하여 우리는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깨달아야만 우리는 자신이 행하는 것이 확실히 하나님의 뜻에 부합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논하려 한 바에는 반드시 성경의 내막을 알아야 하고 성경의 내용과 성경의 역사적 배경에 대하여 이해와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성경은 구약과 신약 두 부분으로 나눕니다. 성경의 구약 부분은 모세오경, 역사서, 시가서, 지혜서 및 일부 선지자의 예언서를 포괄하는데, 주로 기록된 것은 하나님의 창세의 사역과 율법시대에 하신 사역입니다. 예컨대, 하나님께서 어떻게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는지, 인류는 어떻게 뱀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을 배반한 것인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범죄한 후의 인류를 안배하셨는지, 또 어떻게 홍수로 세상을 멸하신 것인지, 노아의 일가는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그 후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모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을 인솔하여 애굽에서 나오도록 하셨는지, 또 어떻게 율법을 반포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땅에서 생활하도록 인솔하셨는지, 그리고 일부 선지자의 예언 등등도 기록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구약 성경에 기록된 것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서 하신 사역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시대에서 생활한 실제 상황입니다.
신약 성경은 4복음서, 사도행전 및 성도들의 일부 서신, 그리고 마지막의 계시록을 포함합니다. 주로 기록된 것은 예수님의 강생, 예수님이 유대 각처에서 어떻게 표적과 기사를 행하셨는지, 또 어떻게 가는 곳마다 전도하시면서 당시의 유대인들을 가르치셨는지,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훼방하고 정죄하고 저버렸는지, 예수님은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힌 후 3일만에 부활하셨는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예수님의 제자와 사도들이 어떻게 전도하고 예수님을 위해 간증하였는지, 어떻게 성령의 인솔 하에 당시의 뭇 교회를 목양하였는지…… 여기에서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이든 아니면 신약 성경이든, 기록된 내용은 모두 전에 하나님이 하셨던 사역과 전에 일어났던 일부 일들에 근거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이런 사역을 하시기 전에는 성경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에 근거하여 역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 점은 모든 사람이 다 인정하리라 믿습니다. 예를 들면 신약 성경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지 300여 년 후에야 사람들이 사도들이 기록한 예수님의 땅에서의 일부 역사와 사도들이 뭇 교회를 목양할 때 쓴 일부 서신 및 주후 90 몇 년에 요한이 밧모섬에서 본 이상(異象)에 관한 기록을 한데 모아 편집한 것입니다. 그중 사도들의 그런 서신은 다 그들 자신의 경력과 하나님 역사에 대한 인식인데, 그들은 바로 이런 경력과 인식을 통해 당시의 뭇 교회를 목양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각 방면의 원인으로 어떤 때는 그들이 직접 어느 교회에 갈 수 없어 서신 방식으로 그곳의 형제자매들을 목양했습니다. 사실, 당시에 사도들이 쓴 그런 서신은 성경에 기록된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중 많은 서신은 수백년 동안 전해 내려오면서 분실되었습니다.
주후 300여 년 즈음에 당시의 일부 종교 지도자들은 이런 서신이 사람에게 매우 도움이 된다고 여기고는 사람들이 읽기 편리하도록 하기 위해 전해 내려온 많은 서신 중에서 일부를 골라 한데 정리했습니다. 그 시대에는 형제자매들이 모두 이런 서신은 사람이 쓴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데에 유익한 점이 있는 편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모두 정확히 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천년 동안 전해지고 또 ≪성경≫, 이 책에 대한 사람의 호감과 예수님에 대한 사람의 애대(愛戴)의 정 때문에 점차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많은 형제자매들이 성경에 편성된 이런 서신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삼고 ‘신성한 언어’로 삼게 되어 어느 누구도 어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입장을 바꾸어 ‘당시의 사람은 이런 서신을 어떻게 대한 것인지?’라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조금만 미루어 생각하면 깨달을 수 있습니다. 당시에 바울, 베드로 등 사도들이 각처에서 교회를 목양하였는데, 뭇 교회에서도 바울, 베드로 등 사도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간혹가다 바울이나 베드로 그들이 서신을 다 쓴 후에는 어떤 사람이 그들의 서신을 교회에 가져가서 “이는 바울 또는 ○○ 형제가 우리 교회에 써 보낸 편지인데 바울 또는 ○○ 형제의 말입니다. 우리가 읽어보고 교통합시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는 절대로 “보십시오, 이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형제자매님, 빨리 와서 읽어보십시오.”라고 말했을 리가 없습니다. 만일 바울이나 베드로를 잘 아는 사람이 그들의 서신을 보았을 때면 “베드로 형제를 제가 잘 압니다. 바울 형제를 제가 잘 압니다. 이것은 그들이 쓴 편지가 맞습니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절대로 “베드로의 이런 말은 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바울의 말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라고 말했을 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사람은 모두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도의 말이고 그들이 잘 아는 바울이나 베드로 형제가 그들의 교회에 써 보낸 편지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며, 그들은 모두 바울이나 베드로는 사람이지 예수님이 아니고 하나님 도성육신은 더욱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바울이나 베드로의 말을 사람의 말로 대하고 사람의 경력과 인식으로 삼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단지 후세 사람들이 바울 그들을 숭배하고 또 그들의 경력과 인식이 사람에게 덕이 된다고 이런 말을 성경에 편성하였을 뿐입니다. 사실, 당시에 이런 서신이 성경에 편성되지 않았을 때에, 사람은 모두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그저 사람의 경력과 인식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보다시피, 바울이나 베드로 그들과 동시대 형제자매들은 모두 실정을 알고 있었고, 그들은 모두 사도들의 서신을 정확히 대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일 그때의 배경을 좀 자세히 돌아보고 상고한다면, 그 사도의 서신은 다 하나님 역사에 대한 그들의 일부 경력과 인식이고 그들이 사역하는 기간에 뭇 교회 형제자매들에 대한 권면과 위로와 격려이지 성령의 직접적인 말씀이 아니고 즉 하나님의 말씀이 아님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만일 성경의 기타 편(篇)과 장(章)이 형성된 배경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이해가 있다면,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효유한 말씀과 선지자의 예언 및 예수님이 사람에게 가르치신 말씀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외에 그 나머지는 다 사람의 경력과 인식, 일부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면 우리가 성경을 정확히 대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우리는 성경의 유래와 성경이 생긴 배경에 대해 논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은 비록 하나님 역사의 진실한 장면이지만 필경 하나님께서 이미 하신 사역이니 하나님의 현시의 역사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성경을 본 사람은 성경에 기록된 것이 율법시대와 은혜시대의 하나님의 두 단계 역사임을 다 알고 있다. 성경 구약에 기록된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歷史)인데, 창세로부터 율법시대가 끝날 때까지 여호와가 어떻게 역사하였는가 하는 것이 기록되었다. 신약 4복음서에 기록된 것은 예수의 땅에서의 사역이며 신약에 바울의 사역이 기록되었는데, 이것이 모두 역사(歷史) 기록에 속하지 않는가? 지난날의 일을 오늘에 가져오면 모두 역사(歷史)에 속하고, 아무리 진실일지라도 역사(歷史)이다. 역사(歷史)는 현실에 맞출 수 없다.』 하나님은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사역은 부단히 앞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필요에 근거하여 부단히 아주 새롭고 아주 현실적인 사역을 하시고 계시며, 하나님께서 하신 각 시대의 사역은 여태껏 성경에 근거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입니다. 우리가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당시에 여호와께서 역사하실 때 성경에 근거하여 하신 것입니까? 여호와께서 ≪창세기≫에 근거하여 세상을 창조하시고 홍수로 세상을 멸하신 것입니까? 여호와께서 모세가 쓴 ≪출애굽기≫에 근거하여 이스라엘 사람을 인솔하여 애굽에서 나오도록 하신 것입니까? 예수님이 ‘4복음서’에 근거하여 십자가의 사역을 하신 것입니까? 분명히 다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런 사역을 하시기 전에는 이런 성경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역사하실 때는 구약 성경이 없었습니다. 그분은 전적으로 인류의 현 상태와 그때 사람의 필요에 근거하여 역사하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홍수로 세상을 멸하신 것은 그때의 인류가 이미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사악하고 음란하여 하나님께서 어쩔 수 없이 그 시대의 인류를 멸하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율법을 반포하신 것은 처음 난 인류가 어떻게 생활하는지, 어떻게 사람이 되는지를 알지 못하여 율법으로 그들을 인솔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역사하실 때는 이미 구약 성경이 있었지만 예수님이 하신 사역이 어떤 것이 성경에 근거하여 하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말씀이 육신 되어 이름을 ‘예수’라 하였는데 구약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에게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라고 요구하셨는데 구약 성경에 사람에게 이렇게 실행하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럴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사람을 교훈한 많은 말씀도 구약 성경에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반포한 율법과 같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갚으라 하셨지만(출 21:24) 예수님은 사람에게 남을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마 18:21-22).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안식일을 지키고 안식일에 무슨 일이든 해서는 안 된다고 요구하셨지만(출 31:12-15) 예수님은 사람에게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해도 된다고 알려주셨습니다(마 12:12). 예수님이 이렇게 하셔야 하는 것도 그때 사람의 필요에 근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시대 후기에 사탄의 패괴로 인하여 사람의 죄가 갈수록 많아져 사람은 이미 율법을 지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율법시대가 계속 지속된다면 사람은 다만 죄 속에서 살면서 더욱 깊이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사람도 죄의 자손이 되고 귀신의 후대가 될 것입니다. 이러면 인류는 모두 사탄에게 삼켜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류의 필요에 근거하여 말씀이 육신 되어 친히 사람을 구원하러 오셔서 사람에게 풍부한 은혜와 물질적 축복을 베풀어주시고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사람의 죄를 담당하고 사해주심으로써 사람을 사탄의 손아귀에서 구속하셨습니다. 이리하여 사람은 사탄에게 철저히 노략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오셔서 여전히 성경에 따라 역사하시고 여전히 여호와와 마찬가지로 사람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하신다면, 만일 사람이 지킬 수 없어 사람을 저주하고 격살한다면, 사람은 다 하나님께 격살될 것인데, 누가 또 속죄의 기회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누가 또 하나님 앞에 올 기회가 있겠습니까?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미 땅끝까지 전해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부터 풍부한 은혜를 누렸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비록 사람이 예수님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기는 하였지만, 사람의 죄성이 아직도 사람 안에 깊이 뿌리박혀 죄의 매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고 아직도 죄의 통제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언제나 어쩔 수 없이 범죄하고 있고, 게다가 정결케 되어 하나님께 완전히 얻어지는 데에 달하지 못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재림하신 후에도 여전히 성경에 따라 역사하시고 줄곧 사람을 용서하시고 사람의 죄를 사하신다면, 사람은 영원히 범죄하고는 죄를 자백하고 죄를 자백하고는 범죄하는 이런 반복적인 상황에서 살지 않겠습니까? 이러면 사람이 어느 때에야 완전히 죄성을 벗어버리고 정결케 되어 하나님께 얻어지는 데에 달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이렇게 역사한다면 사람을 구원하는 효과에 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세에 하나님은 인류의 필요에 근거하여 예수님의 사역의 기초에서 또 한 단계 더 새롭고 더 현실적인 사역을 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사탄의 손아귀에서 구속해 낸 인류를 변화시키고 정결케 하여 죄악에서 완전히 벗어나 거룩한 사람이 되어 진정 하나님께 얻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현재는 시대가 변하고 하나님의 사역이 또 앞으로 발전하였으므로, 형벌ㆍ심판에 의하여 사람의 패역을 벗겨버리고 사람 안의 불결한 것들을 벗겨버린다. 그 단계는 구속이므로, 그가 반드시 그렇게 하여 사람에게 넉넉한 은혜를 베풀어 사람으로 하여금 누리게 해야만 사람을 죄에서 구속해 낼 수 있었으며, 은혜에 의하여 사람의 죄가 사함을 받도록 하였다. 이 단계는 형벌과 심판에 의하여, 말씀의 격타(擊打)에 의하여, 말씀의 징계와 폭로에 의하여, 사람 안의 불의한 것들을 드러낸 후 구원받는 데에 달하게 하는 것인데, 구속보다 더 심화된 사역이다.』 하나님 말씀에서 보다시피, 하나님의 이번 역사는 주로 말씀을 발표하는 것인데, 말씀의 형벌 심판에 의해 사람 안의 모든 불의한 것들을 드러내어 사람에게 자기 안에 깊이 뿌리박힌 사탄의 패괴 성정에 대하여 인식이 있게 하고 또한 완전히 변화될 수 있게 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죄의 매임에서 철저히 벗어나 진정 하나님 앞에 돌아와 하나님께 완전히 얻어질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은 구속보다 더 심화된 사역이고 하나님이 이전에 하신 적이 없던 사역이니, 당연히 성경에 기록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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